일요일, 11월 20, 2011

싸가지와 느자구

싸가지와 느자구
Source: http://blog.daum.net/ysnaju/8673856


싸가지와 느자구종종 경우 없고 버릇 없는 사람을 보면 "늦쪽바가지 없다"는 말을 썼더니 어떤 이가 "그게 뭔 말이냐?"고 물어온다. 가만 생각해보니 대체나 확실한 의미를 알고 쓴 말을 아닌 듯하여 말의 뿌리를 찾아 나섰다.

인터넷 몇 곳을 뒤져봐도 정확하게 '늦쪽바가지'라는 말의 흔적은 찾기 어렵고 아마도 이건 전라도 특히 나주에서 나고 자라면서 주워들은 이쪽 사람들의 방언이 아닐까 싶고, 늦없다, 느자구없다에서 좀 더 어감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 나 혼자 만들어 쓴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전라도 말에는 '싸가지'와 비슷한 의미를 갖는 '느자구'라는 말이 있다. 이 말도 '싸가지'처럼 '느자구 있다'나 '느자구 없다'처럼 존재 동사인 '있다'나 '없다'와만 어울려 쓰이는 특징을 갖는다. '느자구'는 어원적으로 '늦'이라는 명사에 '-아구'라는 접미사가 결합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명사 '늦'은 전라도 말에서 '늣'으로 홀로 쓰이는 수도 있는데, 그 의미는 '느자구'와 같다. 그래서 '쩌 놈은 허는 것이 늣이 있어'라 하기도 하고, '늣 없는 놈헌테는 기대를 말아야제'라 쓰기도 한다. 이 '늣'은 옛말에 '늦'으로 나타나는데, <조짐>이나 <징조>를 뜻하던 말이었다.

그래서 『용비어천가』에는 '寶位 실 느지르샷다(是寶位將登之祥)'와 같은 말이 보이고, 『월인석보』에는 '죽사리 버서날 느지오'와 같은 표현도 나타난다. 이 옛말의 '늦'이 전라도 말에서 '늣'으로 변했지만, 접미사 '-아구'가 붙은 '느자구'에는 원래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처럼 '늦'이 홀로 쓰일 때에는 '늣'이 되지만 복합어에서는 '늦'으로 남아 있는 것은, 언어 변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복합어 안에서는 언어 변화가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싸가지'가 구체적 명사인 '싹'으로부터 파생되어 <앞이 트일 징조>와 같은 추상적 의미로 변해 갔다면, '느자구'는 처음부터 <징조>나 <조짐>의 뜻을 가졌던 것이다. 옛말 '늦'이 가치 중립적인 <징조>의 뜻만을 가졌던 것인지, 아니면 긍정적인 의미인 <앞으로 일이 잘 될 징조>를 가졌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한 일이나, '느자구'는 '싸가지'와 달리 애초부터 추상적 의미를 가졌던 것임은 분명하다.

오늘날 '싸가지 없다'나 '느자구 없다'는 사람의 행동이나 말이 형편없음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인다. 원래는 그 형편없는 말이나 행동으로 미루어 그 사람의 앞날 역시 형편없으리라는 뜻이 담겼을 터이지만, 근자에는 장래에 대한 부정적 징조보다는 단순히 눈앞에 벌어지는 행태가 형편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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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s,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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