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6월 21, 2010

원더걸스 뮤직디렉터 이승환이 말하는 ‘작곡가의 길’

간만에 좋은 글 posting 한다. ^^

Source: http://culturenori.tistory.com/957

원더걸스 뮤직디렉터 이승환이 말하는 ‘작곡가의 길’

작곡가 이승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어서 발라드 곡을 쓰는 작곡가 이승환 씨는 그 마음을 담아 ‘바람의 화원’, ‘시월애’, ‘연애편지’ OST 등 친숙한 멜로디로 우리의 가슴 속에 다가왔다. 가수가 자신의 곡을 더 잘 불러주었을 때 감동을 받는다는 이승환 씨를 만나 작곡의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이  름 : 이승환 (現 상명대학교 음악대학원 컴퓨터음악과 초빙교수)
학  력 1998년 l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학사(B.M.)/2003년 l New York University 작곡과 영화음악전공(Film Scoring) 석사(M.A.)
수상경력 2004년 l New York Lincoln Center Film Music Festival - Finalist /1993년 l ‘유재하 가요제’ 은상 수상
작품 및 연주활동 경력 (본인 앨범출반 리스트) 2002년2월 l 그룹 ‘스토리’ 앨범 2집 (대영 AV), 솔로 독립, 프로듀서 겸 가수로 활동/1999년3월 l 그룹 ‘스토리’ 앨범 1집 (대영 AV) : 앨범 프로듀서 겸 가수로 활동

대학 시절 가수 박정현의 앨범 수록곡 ‘이제 넌’을 계기로 김형중, 성시경, 이소라, 차태현 등 유명 가수들의 곡을 쓰고, 박진영, 원더걸스 해외 공연 Music Director로 활동영역을 넓혀 가고 있는 작곡가 이승환 씨는, 다양한 작곡 활동뿐만 아니라 현재 대중 음악을 가르치는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클래식이 혼자만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면, 대중 음악은 소통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어요. 대중과 소통하는 음악을 하고 싶었습니다.”

작 곡가 이승환은 원더걸스 해외 공연 Music Director로 활동하고 있다.

음악적 소양 바탕, Composer의 길로
클래식 피아노를 6살 때부터 시작했다는 그는 음악가 집안이라는 백그라운드도 없고 작곡가가 되고자 꿈꿔온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에 따르면 어린 시절 다른 것에 비해 피아노 치는 것만큼은 싫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 계기가 되어, 대회 출전과 입상경력을 통해 음악적 소양을 쌓아왔다.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피아노 연주를 계속해왔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갑자기 그만하고 싶어졌어요. 사춘기의 고민과 더불어 공부도 제대로 할 시간이 없었는데, 피아노를 치려면 손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좋아하던 농구 등의 거친 운동도 포기해야만 했죠. 그 때는 피아노 연주가 저의 인생에서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매일 5~6시간씩 연습을 해야 대학 진학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학업과 병행하기에는 무리라는 판단이 섰죠.”



그 동안 대학 교수님께 개인 레슨을 받는 등 투자한 비용과 시간 등이 많아 더 고민이 됐지만 길이 아니다 싶어서 그만 두고 공부에만 몰두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1학년 말 즈음, 문과, 이과를 선택하는 갈림길에 섰을 때 문득 ‘음악을 다시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음악을 안 한다고 선언했었는데 다시 시작한다고 말을 번복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결심을 부모님께 털어놓고 양해를 다시 구했죠. 다시 음악학도의 길로 접어들기로 했지만,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기에는 3년 간의 공백 때문에 늦은 감이 있었어요. 고민 끝에 음악적인 여러 가지 기본이 양분 될 수 있는 작곡을 선택하기로 했어요. 특히 작곡과는 피아노를 기본으로 해야 하는데 공백 기간은 있었지만, 기본은 다져져 있어 해볼만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작곡과에 지망하게 되었습니다.”

클래식 작곡가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까지
서울대학교 작곡과에 재학하면서 2학년 때까지 클래식 작곡을 전공하던 때, 이승환 씨는 계속 해오던 고전적인 것 말고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고 시작했다. “클래식은 다른 사람들과 호흡을 같이 맞출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죠. 그래서 대중과 호흡할 수있는 것이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평소 대중 음악, 영화, 뮤지컬 등에 관심을 두고 있어서 대중 음악 분야는 어떨까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던 터였죠.”
그는 당시 인기 있던 싱어송라이터 유재하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대학교 1학년 때 대학로를 지나가다 유재하 가요제가 진행 중인 것을 보고 관객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그 때 같은 학과 유희열 선배가 연주하는 것을 보게 되면서, 나도 한 번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준비를 시작 해 1년 후 나가게 되었고 ‘우산과 아이(1993)’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몇 달 후 군입대를 하면서 ‘제대 후 하고 싶었던 대중 음악을 꼭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가 음악을 배울 때는 환경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어요. 요즘처럼 대중 음악을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돼 제대 후 좋아하는 음악을 많이 들으며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1년 정도 가졌죠. 독학을 하다 알게 된 선배가 녹음실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었는데, 선배를 만나러 갔던 날 우연히 가수 김현철 씨와 만나게 되면서 인연을 맺어 함께 작업하게 되었어요. 그 인연이 오버그라운드(Over ground)로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가 된 셈이었죠.” 그 후 지금처럼 컴퓨터나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그는 자신을 알리기 위해 1996년부터 1997년까지 1년 동안 작업을 해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기획사에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레코드 사에서 데모 테이프의 노래 중 하나가 좋아 앨범에 쓰고 싶다고 전화가 왔고, 그 곡이 바로 박정현 1집 ‘PIECE’에 수록된 ‘요즘 넌…’이라는 곡이다. 이 곡이 그가 대중 음악을 작곡하면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인 계기가 되었다. 타이틀 곡은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정식 음반에 자신의 곡이 실린다는 것, 이승환 씨는 그것에 감동했다.

“박정현 씨 앨범 작업 이후 다른 가수들의 작업 제의가 많이 들어와 인연을 맺고 작업하는 데 큰 바탕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작곡이란 감성을 교감하는 작업
작곡가가 작사까지 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통 노래가 나오기까지 곡을 먼저 쓰고 작사를 하게 된다. 좋은 시의 경우 나중에 곡으로 붙이는 경우는 있으나 이는 극히 드문 경우라고 한다.
클래식 음악을 했던 것 때문에 대중 음악 작곡가로 들어서면서도, 록 보다는 클래식에 바탕을 둔 감성적인 발라드를 지향하게 됐고, 이는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 감성적인 부분을 더 돋보이게 할 수 있었다.
“어떤 아티스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감성들이 중간에 바뀌지는 않아요. 대개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과 맞는 부류와 어울리게 되죠. 그리고 악기를 많이 다룰 줄 아는 것이 작곡가에게는 유리하지만, 건반 오케스트라고 비유되는 피아노를 연주할 줄 아는 것은 화성, 멜로디, 반주 모든 것을 통합하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직업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라도 누구에게나 힘든 부분은 있다. 특히,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새로운 곡이 매일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매번 새로운 곡을 쓴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다.
“대중 음악을 작곡한다는 것은 저를 위해 곡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가수를 위해서, 다른 악기연주를 위해 곡을 쓰는 것이죠. 작곡을 할 때마다 가수에 어울리는 곡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때 작곡가와 가수의 교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교감을 나누려면 음악적인 것 외에 감성적인 부분에서도 공통점을 찾아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가장 힘들지요.”
창작의 어려움 속에 요즘 사회적 이슈인 표절과 저작권 등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물어봤다.
“표절의 경우 의도적으로 한 것과 곡을 썼는데 어떤 부분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나죠.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음을 들었을 때 표절인지 아닌지 정도는 판단할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작곡을 끝내고 무엇인가 의심이 들면 다른 작곡가들의 곡과 비교해보곤 합니다. 저작권의 경우 저작권 협회에 등록을 해서 관리하는데, 가끔 가수 이승환 씨와 이름이 같아 곡이 엇갈려서 등록된 적이 있어요. 곡을 쓰겠다고 전화 왔을 때 우연히 알게 되는데 그 때마다 수정하고 있는데 크게 문제가 된 적은 없어요(웃음).”
이승환 씨는 우리 나라는 대중음악 역사가 오래되지 않아서 각 장르별로 마니아 층의 폭이 협소하고 스타일이 빨리 변하는 편이어서, ‘빨리빨리 유행에 맞춰 음악을 쓴다’는 느낌이 힘들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요즘 학생들은 좋은 여건 속에서 열정도 많아
대중 음악 작곡가 외에 영화 OST 작곡, 가수 음반 디렉터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현재 상명대학교 초빙 교수로 작곡을 가르치고 있다.

“과거에는 하드웨어 장비를 많이 필요로 해서 작곡을 시작하려면 초기 자본이 많이 필요했지만, 요즘에는 소프트웨어가 잘 나와서 4분의 1정도로 가격이 낮아졌어요. 또, 정규앨범이 아니더라도 대중과 접촉할 수 있는 블로그, 홈페이지 등을 통해 대중과 호흡하는 시간이 단축되고 자신의 실력을 공개해 대중과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죠. 과거보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절감돼 대중에게 접근이 쉬워진 거죠.”
그렇지만 좋아진 여건만큼 안 좋은 점도 있다. 온라인 마켓의 대두로 CD앨범은 거의 구입하지 않고 온라인의 3분의 1정도로 축소된 점, 특히 음반을 발매하기 위해 숨어있는 조역자들, 음반 프로듀서, 음향 기술자 등이 거의 드러나지 않게 된 것이다. 또, 한 번의 클릭으로 쉽게 곡을 선정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약 4분 정도 재생되는 곡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가 들어가는지에 대해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현존하는 음반 시장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handwriting
handwriting by Flowery *L*u*z*a* 저작자 표시

“작곡은 공부해서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감각을 필요로 하는데,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을 들었을 때 자신도 공감하고 감동을 받아야 하죠. 작곡가가 되고 싶다면 되도록 많은 음악을 접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편협하게 음악을 골라 듣지 말고 폭 넓게 접해 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골라간다면 작곡가로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망도 하나씩 이룰 때마다 단계적으로 높아진다고 이야기하는 이승환 씨는 무명 시절 가졌던 ‘내 곡이 히트하면 얼마나 좋을까’, ‘내 이름이 실린 앨범을 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등의 소망을 늘 품고 살았다. 그리고 현재 가졌던 소망을 다 이루었다. “그런 생각들이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어요. 이 모든 것을 이룬 후에도 여전히 소망들이 있고, 대중음악뿐 아니라 뮤지컬, 영화 등을 통해 제가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보고 싶어요.”
이승환 씨는 피아노는 5시간 연습하면 그 만큼 노력의 수확을 거둘 수 있지만 작곡은 5시간 동안 고민한다고 해서 좋은 곡이 나올 수는 없다는 것이 작곡이라고 말한다. “어떤 때는 1시간 쓴 곡이 좋은 곡으로 나올 수도 있는 것이죠. 그렇지만 1시간의 좋은 곡을 쓰기 위해서는 정서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작곡가가 되고 싶다면 공연, 연극, 뮤지컬, 영화, 여행 등 문화 생활을 많이 경험하면서 내면적인 정서를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틈만 나면 여행을 다니고 영화, 전시 등도 꼭 찾아본다는 이승환 씨처럼 무엇보다도 감성을 더 풍부하게 만들고 대중과 공감하는 노력을 한다면, 작곡가의 길은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 대중 음악 작곡가뿐만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그의 감성적인 활동을 기대해 본다.


글. 최선희 기자 archy77@naver.com
사진. 박준기 기자 marcbymarc@naver.com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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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s,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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